80386과 전략적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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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위기대응 방식···코드명「진압작전」

[마이크로프로세서 전쟁] ② 80386과 전략적 변곡점

안윤호 (아마추어 커널 해커) ( 아마추어 커널 해커 ) 2004/01/19


1980년대 인텔이 발표한 80386마이크로프로세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성공이 있기까지 인텔에게는 절대절명의 위기가 있었다. 1978년에 발표된 엉터리 칩 인텔 8086, 객관적으로 우수한 프로세서 모토로라 68000 그리고 인텔의 대응책 코드명 '진압작전'. 1970~80년대 마이크로프로세서 전쟁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최초로 구현된 인텔마이크로프로세서인텔이 아닌 다른 회사로부터의 주문에 의해 우연히 탄생했다. 그 이전에도 페어차일드(Fairchild)에서 마이크로콘트롤러의 특허를 신청한 사람이 있었으나 실제로 구현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는 80808085 그리고 Z80 같은 인텔과 호환되는 CPU가 시장을 점유했다. 8080의 발표 이후 이른바 퍼스널 컴퓨터라고 부르는 개인용 마이크로컴퓨터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으며, 수백 개가 넘는 컴퓨터 회사가 개인용 마이크로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8080 계열이 아니면서 시장에서 비교적 우세한 점유율을 갖던 회사는 애플과 아타리 그리고 코모도어(Commodore)가 생산하던 마이크로컴퓨터에 탑재된 6502를 생산하던 모스텍으로 6800의 변형판에 가까운 설계를 구현했다. 인기가 있던 애플 II에 사용된 6502를 제외하면 인텔이 유리한 입장에 있었는데, 이때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텔 칩의 사용에 익숙해진 덕분에 다른 좋은 칩이 발매되어도 사람들은 계속 인텔 CPU를 사용했다. 인텔 칩의 개량판인 Z80이 인텔 8080의 명령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사람들을 인텔의 영향권에 묶어 놓는 데 일조했다. Z80을 만든 사람들 역시 인텔로부터 독립한 설계팀이었다.

시장의 변화와 관성의 법칙

CPU 뿐만 아니라 주변 칩들의 사용법도 한번 익숙해지면 그 사용의 관성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관성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려면 그 관성만큼 크거나 때로는 몇 배나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초창기가 지났지만 1980년대에도 많은 책들과 잡지에서 8비트의 인텔 칩을 소개했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선택의 다양성이 적은 이유로 그 다음에는 점유율이라는 마술적인 힘에 의해 인텔 칩들을 열심히 쓰고 있었다. 몇 개월 늦게 나온 이유로 모토로라6800은 성능이 더 좋은 프로세서임에도 불구하고 고전하고 있었다. 70년대에도 많이 찍으면 싸게 팔 수 있었고 가격을 조종하는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퍼스널 컴퓨터를 제외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또 다른 큰 시장은 단말기 시장이었다. 초기 단말기들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미분화 상태를 반영하고 있었다. 미니컴퓨터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단말기를 통해 계정을 얻어 사용하는 것으로 독자들이 리눅스(Linux)나 다른 운영체제(Operating System)텔넷으로 접속해 사용자 계정에서 작업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이다. 그전까지 단말기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아니라 수많은 로직 게이트(logic gate)로 만들어져서 지능이 떨어지는 이른바 멍텅구리 단말기(dumb terminal)라고 불렸다.

마이크로프로세서덤 터미널을 사용하고 있던 단말기 시장을 석권했다. 단말기가 비디오 형태로 나오기 이전에는 텔레타이프라이터(TTY, Tele TypeWriter, 요즘도 유닉스에는 /dev/tty가 있다)를 사용했다. 텔레타이프라이터의 자판에 글씨를 쓰면 이 글자들은 바로 그 앞의 종이에 한 글자씩 인쇄가 되고 오늘날의 리턴키에 해당하는 캐리지 리턴(CR, Carriage Return)을 치면 줄바꿈이 일어나고 인쇄용지가 앞으로 전진했다(LF, Line Feed). 이 방식은 많은 논란이 있어서 지금도 MS-DOS 형태의 텍스트 파일은 줄바꿈이 일어나는 부분에서 CR-LF가 같이 존재하고 유닉스들은 CR 문자만이 있다.

VT100 단말기

당시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수많은 단말기 업체들이 텔레타이프라이터를 모니터에 구현하면서 많은 기능을 첨가해 구현하다보니 이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NetTerm이나 텔넷(Telnet) 프로그램의 단말기 에뮬레이션의 인터페이스 선택이 혼란스러운 것은 이들 업체가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새로운 기능을 부가하면서 서로 다른 표준을 냈기 때문이다. 시장이 초창기였으므로 요즘의 표준위원회 같은 것은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때였고 성공적인 업체의 상품이 바로 표준이었다.

사실상의 업계 표준(defacto standard of industry)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런 표준이 생긴다는 것은 그 이전에 치열하게 싸우던 다른 업체의 소멸과 시장이 새롭게 정리됨을 의미했다. 텔넷 프로그램의 표준 모드인 VT-100이나 VT-220 아니면 Hazeltine 같은 것은 당시의 유명했던 단말기의 상표명이고 이들 단말기를 텔넷이 흉내내는 것을 말한다. 텔넷의 수많은 단말기 모드는 과거의 잘 나갔던 모델의 상표명인 경우가 많다. 수요가 거대했던 단말기를 만드는 업체는 돈을 많이 벌었고 하룻밤 사이에 떼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에 갑자기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한 마이크로컴퓨터 업체는 시장이 커지고 점유율 경쟁이 일어나면서 중요한 몇 개의 업체와 중요하지 않은 수백 개의 업체로 구분되었다. 단말기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그 주변 칩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IBM 같은 회사도 있었고 IBM의 엔지니어들이 단말기에서 인텔의 주변 칩을 사용했던 이유가 나중에 PC 산업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칩을 계속 사용하는 습관이 IBM에서 인텔8088/86IBM PC에 채택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PDP-11

시장이 커지다 보니 70년대 말에는 몇 개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마이크로컴퓨터 업체나 CPU를 생산하는 업체들도 마찬가지로 중대한 변화를 예감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 시장의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른바 ‘예정된 전쟁’이 모든 메이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텔모토로라 그리고 자일로그(Zilog) 같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업체는 모두 성능이 뛰어난 16비트 프로세서가 앞으로의 시장장악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이 성숙하면서 미니컴퓨터 업체가 경험했던 중요한 변수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들 변수는 버스운영체제였으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참여한 엔지니어들은 DEC(Digital Equipme nt Corporation) 같은 미니컴퓨터 업체의 엔지니어들처럼 체계적인 관점을 갖지는 못했다.

DEC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도입되기 힘든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70년대 말 DEC미니컴퓨터 세계에서는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로 군림하면서 PDP 시리즈VAX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었다. 인텔40048008PDP-8의 영향으로 설계된 것이며, 이제 프로세서 업체들은 성능 향상을 위해 PDP-8의 상위 기종인 PDP-11과 유사한 기능을 갖는 컴퓨터가 필요해 질 것을 알고 있었다(VMS유닉스의 개발도 PDP-11에서 중요한 가닥이 잡혔다. PDP-11은 이미 70년대에 MMU를 완전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8비트 퍼스널 컴퓨터 열풍의 산실인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메모리 공동체(Community Memory) 역시 PDP-8의 사용 경험이 있었다).

Ken Olsen (1926~2011)

그러나 정작 DEC에서는 퍼스널 컴퓨터 시장은 무시하고 있었다. 미니컴퓨터에서 충분한 시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DEC의 CEO이던 켄 올슨(Ken Olsen)은 많은 비전과 기술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던 엔지니어 출신이었지만 정작 퍼스널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그의 유명한 예측은 크게 빗나갔기 때문에 아직도 인용되고 있다(“개개인이 자기 집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켄 올슨, 1977년).

올슨은 공개석상에서도 퍼스널 컴퓨터에 대해서 계속 무시하는 입장을 취했다. DEC는 1980년대 후반까지 다른 PC가 추구했던 중요한 기술을 이미 1970년대에 확보하고 있었다. 32비트 프로세서, VMS 운영체계(VMS는 나중에 윈도우 NT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둘 다 주 설계자는 데이빗 커트러(Dave Cutler)로 동일 인물이다), 주변장치 인터페이스에 대한 기술과 버스에 대한 통찰력 같은 것이다. 물론 개발 언어도 확보하고 있었다.

필자는 DEC의 중요한 엔지니어였던 고든 벨(Gordon Bell)의 문서들을 읽으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http://research.microsoft.com/users/GBell/). 1970년대 미니컴퓨터의 수준이라는 것이 결코 낮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고급 기술들은 다시 PC 업체들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새로 발명되었다. DEC는 90년대 후반에 컴팩에 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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